찬양 사역의 성육신과 세속주의 - 강명식 -


어쿠스틱 기타로 찬양하는 사역자들의 모임, 'HolyGuitars.com' 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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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될때에 말씀은 가려지게 된다. 

그러나 음악적 수준이 낮을때에 말씀이 강조되어지는 것은 아니며

수준이 높다고 음악을 즐기게 되는 것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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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 이 지면을  통해 [작은 예수들]이라는 제목으로 현대 대중음악을 이용

해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고 있는 미국의 찬양 사역자들에 대한 다양한 사역 모습

을 소개 하였다.  그  이후 본인의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몇가지 사

건의 변화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반대 방향, 즉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 찬양 사역

을 생각해 보고자한다.

  그 사건이란 Amy  Grant라는 가수(찬양 사역자라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

음)에 대한 것인데,  지난호에서 세속음악으로 넘어갔다가 다시돌아 왔다는 이야

기를 했는데, 최근에 다시 완전히 세속음악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

녀의 'Baby Baby'란 곡은 Bill board chart에 수주동안 톱을 달리는 쾌거를 이루

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중간에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길이 없지만본인은  그 가수의 생명 자체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나의 변화는 본인이 그 원고를 쓸때와 지금은 수 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암 지만 한국에서도 Christian  Rock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그것과는 아직 많은 차이가 있지, 무분별하게 발

전(?)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성가는 벌써부터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

다.  그 중에 대표적인 문제점이 세속주의, 상업주의 그리고 기교주의 등이다.

  위의 세가지 문제는 소리없이 살며시 파고 들어 그 본질까지 흔들어 버리는 사

탄의 전략임이 틀림없다.  각각 다양하게, 전면적으로 진격해 오지만 특히 세속

주의는 가사에, 기교주의는  음악성에, 상업주의는 목적과 관계가운데서 그 영향

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속주의는 세상과 타협하는 생각과 움직임을 말하는 데 찬양에 있어서 세속주

의는 그 가사의 불  분명함, 모호함 등에서 시작된다.  즉, '하나님', '예수님',

'주님'(God, Jesus, Load)이라는  말 대신에 '그분', '그', '당신'(He, You)이라

는 말로 대치된다.  이 현상은 이미 미국에서는 만영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적

쟎게 보여진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렇

게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메세지를 약화 시키는 결과 밖에는 안된다.  그리고 그

것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임을 노래가 끝난 뒤에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무리

거룩한 것을 노래한다해도 분명히 말해주지 않으면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짓밟게

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예수의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왜 숨기는가?  그 이

름은 능력의 이름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된다.

혹시 예수가 부끄러워 '그'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하나의 현상은 가사의 내용이 개인적인 내용과 생각에 머무는 것이다.  진리

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깊이 뿌리박을때에 비로서 진리(진

정)로 찬양(예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얄팍한 느낌의 공감대만으로는 인격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찬양의 음악적인 세속화는 기교주의라는  얼굴로 다가온다.  쉽게 말해서 음악

을 즐기려는 동기로부터 기교주의는  발생한다.  찬양은 하나님께 올려지는 향이

다.  이  향을 자신이 즐기기위해, 자신이  맞으려고 만드는 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말씀하신다.(출  30:37-38)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

다.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에 지나친 관심을 기

울이게 될때 말씀은  가려지게 된다.  그러나  음악적인 수준이 낮을때에 말씀이

강조되어지는 것은 아니며, 수준이 높다고 음악을 즐기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

사를 잘 살려주는 수준높은  음악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

다.

  또하나의 위험은 상업주의인데, 이것은 찬양의 상품화와 재정의 관리 측면에서

나타난다.  찬양 앨범이 제작되어질때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해서, 그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동기 이외의 다른

동기는 불순한 것이다.  그리고 앨범을 만드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역의 결정체로 찬양이 모아졌거나,  새로운 사역의 계획에의해  앨범이 제작되

어야 한다.  한 곡 한 곡이 한편의 설교가 되어야한다.

  찬양 사역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때에는, 그래도 헌신적인 마음으로 사역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어느정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괜챦은 사역이 되면서,

더욱 많은 문제를 안게된다.  무슨 형태의 사역이든 하나님의 일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되어져야 하건만, 자신을 선택하는 방식으로서 찬양을 선택할

수 있다.

  이제는 찬양 사역이 장사로도 괜챦은 모양이다.  불황기인 요즘에도 찬양 Tape

만은 꾸준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기야 불안할 수록 사람들이 종교적이 되어서

그렇겠지만......  차라리  경제적으로 어려워야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분

위기가 계속될 수 있을텐데.  아무튼 찬양 연예인들(?)을 끼고 좀 챙기려는 사람

들도 심심찮게 있어, 이용당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아직 우리 현실엔

조금 멀게 느껴지지만 이제 곧 피부적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우 찬양

사역자중 돈을 너무 많이 번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 돈과 명예의 문제는 상

업주의를 경계하지 못할때 계속 더욱 심하게 우리를 괴롭힐 것같다.

  찬양 사역이 중요하고 효력있는 만큼, 사탄이 시기하고 방해 할것이 분명하나,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이때에, 그  반대 세력이 너무나도 강하다고 느껴진다.

우리를 구하기위해 우리의 모습으로 찾아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분이

우리 육신으로 오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바로 성(성, 거룩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잃어버린  그들을 위해 다가갈 때에 필연적인 조건은 그분의 거

룩함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하나님의 깊숙

한 곳에 먼저 우리의 거처를 삼아야한다.

  또한 예수님은 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이땅에 오셨건만, 세상은 자기 행

위가 악하므로  빛(예수)보다 어두움을 더욱 사랑하였다.(요  3:16, 19)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우리도 복음을 뚜렷하게 전할

때,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게속우리를 환영하고 좋아한다면 우

리는 분명히 세속적인 것이다.

  우리의 찬양은  세상에 있어서, 걸림돌이요,  찌르는 것이요, 도전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것 같이 여긴다

면(겔 33:32) 우리의 메시지는 더이상 능력이 없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

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인한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아버지께서 세상에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

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하려 함이니이다."(요 17:14-19)







        찬양 사역 논단.============================================




                                    강명식(주찬양 선교단)




제목: 기도하지 않는 찬양사역자.




I. 시작하는 글




  크리 스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하나가 기도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가 찬양사역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라면 어떨까요? 그래도 찬양 사역인데 찬양이 더 중요하겠지....!! 물론, 기도와

찬양의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하느야에 따라서 여러가지 상이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기도가 더 중요한지, 아니면 찬양이 더 중요한지는 별 문

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님의 빛 비추심을 받아서 함께 살펴 보고 나누려는 것은 ; i)

크리스챤으로서 동시에 찬양  사역자로서 기도를 얼마나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

는지,  ii) 왜  기도가 찬양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iii)중요하게 느끼는

만큼 얼마나 실제로 무릎을 꿇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우리의 뻣뻣한 무릎을 주님

앞에 꿇도록 하자

는 것입니다.

  당신은 찬양 사역자로서 얼마나 무릎을 꿇고 계십니까?




II. 찬양 사역 = 기도사역!




  찬양 사역자들은 기도를 제일  많이 해야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동시에 찬양 사역자들에게 기도가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

은 찬양과 기도가 아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보이고 동시에 비슷한 것으로 여겨

지기때문입니다.  이와 관련된 몇가지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

도록 하겠습니다.

  몹시도 무더웠던 지난해 찬양 캠프의 마지막날 전철민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찬양캠프라고 하니 이 더움 날씨에도 이렇게 많은 사

람들이 모여들었는데 만약, 기도캠프를  한다고 광고를 하면 고연 몇사람이나 모

이겠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찬양'을 통한 사역이 찬양 사역이라면 '기도'

를 가지고하는 기도 사역도 가능하지 암 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

고 전혀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기도만하는 '기도 사역자'를 위한 기도 캠프가 열

린다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 들이 매력을  느끼고 열광적으로 참여하여 들런지도

궁금하였습니다.

  사실, 기도한다는 것이 매우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와의 꾸밈없는

대화'이지만 '노동'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아주 짧고

간단한 고백도 분명 기도이지만, 우리의 평생을 두고 걸어 거야할 순례의 길이기

도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로 여기에 찬양 사역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믿

음의 초기단계

에서 홀로 기도할 수 없을때, 또 기도하기조차 어렵도록 침체되어 있을때 찬양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산소와도 같은 생명을 다시 호흡하도록 해 주는 것이 찬양 사

역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찬양 사역의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사역자

개인(그리고 팀의)의 기도만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도와의 개인적인 교통이 없이는  절대로 생명을 낳을 수 없음을 누누히 강조했었

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생명을 얻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내 안에서 매일 새롭고  풍성해 지도록 하여야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주님과의 은밀한 교제, 즉 그분 앞에 조용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더우기, 대개의 찬양 사역은 -그 의미를 다소 한정시켜 생각할때 -여러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일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수의 찬양 사역자가 찬양을

하거나 찬양 집회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어떠한 형태의 사역에서나 기도가 필

요하지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에서는 내밀하고 은밀한 기도가 더욱 요

구됩니다.  각각의 사역이나  집회에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과, 사역과,

사역으로 섬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도들은 많은 시

간을 요하거나 때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여러기도의 사람들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습니다.







III.  왜 기도하지 않게 되는가?




  그런데 찬양 사역 전반의 주된 분위기는 일견 기도와는 거리가 먼것 같이 보입

니다.  겉으로 드러나고,  화려하고, 뛰는 것이지, 아무래도 골방에 숨을 죽여가

며 오랜 시간 기도에 골몰해야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앞서 잠시  언급한 찬양과 기도와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기도를 소홀히 여

기게되기 쉽습니다. 즉, 좀  부족한 주님과의 교제는 실제 찬양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기재와 악

기들을 겨우 준비해 놓고  준비 기도회를 못한채 시작을 합니다.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각자 묵상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자기의 이름과 의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구하며 찬양을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거듭되자, 악기를

세팅하고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도 무엇을 할 지 몰라서 그냥 시간을 보냅니

다.(이것은 우리팀에 실제로 있었던 경험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깊게  보면 매일 매일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굴복시키지 않

으면 너무도  빨리 나태해지고  방만해지는 우리의 악한  본성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되거나, 게기에 율법적으로 얽매여서는 안되겠

습니다.  우리의 그 어떠한  의도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추한 방해거리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로서 아버지와 교통하고, 종으

로서 주인을 응시하고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놓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

단코 우리 자신의  의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순간 순간 머리를 쳐드는

우리의 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기 위

한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주님앞에 무릎 꿇지 못했는 데도 그럭저럭 잘 되나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까? 또 많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같습니까?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로 귀결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자기이름

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사역자의 인격과는 관계없이 일하신 것입니다.  이런 경

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대로 주의 일을 실컫한 뒤에 버림받는 비참한

경우(고전 10:27)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만일

어떤 사역자가  기도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어디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때문이며, 열매는 기도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IV. 공중찬양=개인찬양(=개인기도).




  지금은 주님 앞에서 찬양하고있을,  가히 전설 적인 찬양사역자인 Keith Green

은 끊임없이 기도와 영혼에대한 열정으로 사도시대 전도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

었습니다.  또 유명한 스티브 그린 역시 집회전 수 시간동안 대화를 금하고 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역자들이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

로 사역을 준비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들은 거듭되는 사역 통해서 기도의 중요성을 피부로 절감했을 것이기 때문입

니다. 즉, '공동  찬양시의 모습은 결코 개인적인 찬양  시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노래하는 자들과 전혀 다를 것 없이, 부르고 있는 찬

양곡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표정과 감정을 연출하는 식이 되어버리지 않도록하

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는 (시62:8) 개인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

요합니다.

  당신이 회중앞에서  찬양할 대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개인 적으로 기도하고

찬양드리는 모습은 일치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다 공중찬양시가 더활기차고

풍성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 차이만큼 당신은 껍

데기로 위장된 찬양을 해왔는 지도 모릅니다.







V. 맺는 말, 제언.




  기도와 찬양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들은 찬양이면서 동시

에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하고 지향하는 것은  i) 공중 찬양

시의 찬양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드리는  기도와 찬양만큼 순수해지는 것과  ii)

개인 찬양이 회중들 앞에서  하는 것 이상으로 생기있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 되는 일 입니다.

  찬양집회가 힘을 잃어 가는 듯하고, 모이는 수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새로움과 기쁨이 없을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찬양곡들과 기법을 도입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논의는 바로 여기에 대답하기 위한 것

입니다.  각자 대답해 보십시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관해서 논하고, 서로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심지어 자신은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얼마만큼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젠 말과 머리로가 아니라, 실제로 무릎을 꿇을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찬양 사

역에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동의하거나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간

절히 소원합니다.

  여기에 짐 그레함이 기도와 개인의 영적 생활과 관계에 대해 규정한 것을 찬양

사역에 알맞게 약간 수정하여  제시 합니다.  (그는 이하의 항목들을 수동적으로

긍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부 반박해 보라고 했는데,역시 동일한 제

안을 함께드립니다.)  (1)찬양 사역자의 영적 생활은 그의 기도의 수준을 뛰어넘

을 수 없다.  (2)찬양 선교단(team)은 팀 내의 공동적인 기도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3)팀내의 공동적인 기도생활은 그 팀을 구성하는 개인의 기도생활 수

준을뛰어넘을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기도가 줄어들

고 있다면, 이는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적신호인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되

는 삶과 사역에서 무시로 무릎을  꿇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행하는 종

들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개인적인 기도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몇권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작자미상, 생명의말씀사, 1981

  . '기도' 짐 그래함, 두란노서원, 1990

  . '눈뜨고 기도하라' 리차드 L 프레트, 성경읽기사 1977

  . '기도의 사람 하이드' 프란시스 맥고우, 생명의말씀사, 1977

  . '구령의 열정' 오스왈드 스미드, 생명의 말씀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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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얼마나 회개를 했는지 모른다.

정말 내가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예배자인지, 순전히 '기교주의' 에 빠져버려 하니님의 크신 영광을 가리는 예배자인지 깊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강명식 음악사님의 찬양사역=기도사역 이라는 메세지도 기억에 남는다.. 예배, 집회들을 위한 악기파트연습 & 음악연구는 하면서 예배를 위한, 또 예배를 이끄시는 성령님을 간구하는 기도는 덜하게 되는 나를 바라보게 되며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 여기 미국서 다니는 청년회 성경공부전 찬양인도를 맡게 되었는데 임하기전 나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환기시켜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주님, 당신만을 바라보고 원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원합니다.
Posted by Hu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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